김천에는 우두령(牛頭嶺)이라는 옛길이 있다. 우두령은 산세가 소를 닮아 우두령 또는 소머리재로 불린다.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을 연결하는
길로, 경상도와 전라`충청도 3도민들이 넘나들던 고갯길이다. 지금은 번듯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이웃한 신작로에 밀려 길 모양이 망가지고 고랭지
채소를 하는 농민이나 산사람들이 이용하는 소로로 전락해 지난날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길이다,
◆경상우도의 중요한 교통요충지
우두령은 조선시대 역마가 다닌 경상우도(慶尙右道)의 중요한 교통요충지다.
우리나라 지도를 보면 경북 김천, 성주, 고령, 경남 거창`합천`진주 등이 경상도 왼쪽에 위치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왕이 서울에서 보아
낙동강을 기준으로 우측을 '경상우도', 좌측을 '경상좌도'라고 했다. 따라서 안동 지역은 경상좌도이다. 김천은 경상우도이기 때문에 우두령도 이에
속한다.
김천 우두령의 시작은 조선시대 역마가 있던 장곡(長谷)역으로 보면 된다. 장곡은 지금은 대덕면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는 관기2리이다. 장곡은
고려시대에도 두의곡역(頭依谷驛)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역이름이 바뀌면서 장곡으로 불린다. 면사무소가 자리해 이 지역의 중심이지만 1930년까지만
해도 역 아래 주막 몇 채만 있었다. 그런데 병자(1936)년 큰 수해로 주민들이 옮겨왔고 국도 3호선이 지나면서 번성하게 된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면사무소와 시장 위치를 두고 관기1리(웃마을)와 관기 2리(아랫마을)가 서로 다투다 줄다리기를 해 아랫마을이 이겨 지금의 자리로
결정됐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지금은 역사에 대한 기록과 관터라는 지명만 있을 뿐이고 유물 등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전설과 민담이 살아 숨 쉬는 정겨운 마을
면사무소를 나와 잘 포장된 국도 3호선으로 접어들자 덕산천과 화전천이 합류하는 중간에 수정봉이 눈에 들어온다. 수정봉은 예부터 이곳에서
수정을 캤다고 하는데 '연화부수형'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산이 서산 정씨 소유일 때 초상을 당해 묘를 쓰려고 땅을 팠는데 푸른 돌판이 나와 이를 세우니 학이 날아오르려고 했다. 놀란 사람들이
수정판을 다시 덮을 때 학의 다리가 틈에 끼었다는 것. 이후부터 번성하던 정씨 집안에 흉흉한 일이 생기고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인근 관기3리는 호미(虎尾)마을로 불린다. 이 마을은 마을 뒷산이 풍수지리로 볼 때 호랑이가 길게 누워 있는 와호형(臥虎形)인데다, 마을이
호랑이 꼬리 부분에 위치해 이처럼 부른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호미금계'(虎尾禁鷄), 즉 '호랑이가 사는 마을에는 닭을 키우지 않는다'는 것을
불문율로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밤을 상징하는 호랑이가 낮을 상징하는 닭 울음소리가 나면 새벽이 온 줄 알고 마을에서 달아나기 때문에 마을
운세가 쇠퇴함을 막기 위해 닭을 기르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김천문화원 송기동 사무국장은 "예전에 마을주민이 몰래 닭을 기르다 발각돼 혼쭐이 난 적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닭을 치는 주민이 없다. 이
마을의 법이다"고 말했다.
우두령을 오르기 위해 고갯길을 오르면 첫 마을이 화전리다. 월매산 일대의 산세가 매화꽃이 떨어진 형국인 '매화낙지형'인 명당터라
'꽃밭'(花田)이라는 순수 우리말식 마을이름을 남겼다. 이곳에는 '박선달 모팅이'가 있다. 한 선비가 번번이 과거에 낙방하자, '매화낙지'의
명당으로 조상의 산소를 이전한 후 과거에 급제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금수강산 곳곳은 설화와 민담 등 얘깃거리의 보고다.
◆잊혀져 가는 옛길
화전리를 뒤로하고 조금 오르면 새목골과 화전천이 합류하는 지점이 나온다. 이 마을은 '굽은 마을'이라는 뜻의 곡암(曲岩)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10여 가구가 살았지만 2002년 태풍 '루사' 때 계곡물이 마을 한복판으로 넘쳐 흐르면서 마을이 두 동강 나고 집들이 휩쓸려
내려갔다. 지금은 길 양쪽에 집 2채만 있을 뿐 마을의 흔적이 지워졌다. 마을을 지나면 국도 3호선이 지방도 1099호선과 갈라지는 곳에
도달한다. 국도는 배터재로 해서 거창으로 우회하고 우두령은 이곳에서부터 고개 정상까지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로 이어진다.
예전에는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가 다녔을 만큼 번듯했지만 지금은 도로 폭이 5m가 채 되지 않아 차량 1대가 다닐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원래 이 길이 국도 3호선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거창의 유력 정치인이 나서 자신의 고향과 가까운 배터재 쪽으로 길을 넓혀 새 길을
내고 국도 3호선 이름마저 가져갔다. 이제 우두령은 거의 차량이 다니지 않는 잊혀진 길이 됐다.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을 오르니 주변의 그림이 크게 변했다. 추수가 끝난 늦가을 들과 산은 울긋불긋 색동옷도 벗어 버려 앙상한 나뭇가지가
추위를 느끼게 한다. 사람은 추위를 이기려고 옷을 껴입는데 나무는 오히려 추워지자 맨몸을 드러낸다. 우두령길 주변 밭에서는 농민들이 배추`무 등
고랭지 채소 수확에 한창이다.
우두령 정상 아래에는 '덕석마'로 불린 외딴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마을이 없어지고 돌담`집터 등 흔적만 남아 있다. 또 덕석마 인근
원터들에는 옛날 소지원(所旨院)이라는 관용숙소가 있어 험한 우두령을 넘나드는 길손들에게 쉼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사라지고 상전벽해처럼
고랭지 채소밭으로 변했다.
◆전란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
우두령은 국토 남단에서 서울로 향하는 교통요충지다. 백두대간에서 비교적 낮은 고개를 넘는 우두령길이 지름길이었다. 이 때문에 우두령이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로 인해 임진왜란 등 전란, 민란, 6`25전쟁 등이 발생하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수많은 전투가 벌어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왜군이 전라도로 진출하기 위해 우두령을 넘으려 한다는 첩보를 접하고 당시 의병장 김면과 진주목사 김시민이 함께 관병과
의병을 이끌고 산에 매복해 있다가 이곳에 들어온 왜병 1천500명을 급습해 큰 전과를 올렸다. 사냥꾼과 심마니 등도 대거 전투에 참가해 공을
세웠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 18세기 초 이인좌의 난 때에는 역도들과 관군이 우두령 확보를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역도들이 김천역에 있는
역마를 끌고 가는 것을 한명구라는 역리가 꾀를 내 다시 찾아왔다는 무용담도 전한다.
또 민족상잔의 아픔도 간직하고 있다. 6`25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된 후 후방의 빨치산들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자, 국군이 공비 토벌작전을 벌였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일부 빨치산들이 이곳 우두령 마을에도 내려왔다. 국군 빨치산
토벌대가 거창에서 무고한 양민들을 공비와 내통했다고 무차별 학살했는데 같은 날 거창과 이웃한 이곳 덕석마 마을에도 공비 토벌대가 들이닥쳐
주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30여 가구가 살던 마을은 폐허가 되고 지금은 겨우 불탄 집터 등이 마을이 있었음을 짐작게 할
뿐이다. 한 줄기 바람에 스치는 '으악새'의 울음이 무고한 학살 양민들의 원혼을 달래주는 듯하다.
◆김천의 젖줄인 감천의 발원지인 너드렁 상탕
우두령 고갯마루에 오르면 길 오른쪽 방향으로 '감천(甘川) 발원지'라는 표지판이 있다. 감천 발원샘은 이정표를 따라 2㎞를 가면 봉화산
8부 능선 부근에 있다. 이 샘은 용천수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으며 '너드렁 상탕'이라고 부른다.
마침 우두령을 찾은 이달 18일에는 고개 정상에서 감천 발원제가 열렸다. 1999년 김천문화원 중심으로 '김천시 승격 50주년
기념사업'으로 감천 발원지 찾기에 나서 탐사단이 '너드렁 상탕'을 발원지로 정했다. 그해 샘 주변 정비작업을 하고 첫 발원제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올해 13년째를 맞는다. 매년 발원제 때는 '너드렁 상탕'에서 제를 올리는데 비`눈이 오는 등 궂은 날씨로 산에 오르기 어려우면
이번처럼 우두령 정상 한쪽에서 시민들의 안녕과 지역 발전을 기원하는 발원제를 갖고 있다.
우두령을 넘어서면 경남 거창군 웅양면으로 이어진다. 거창 쪽 우두령길은 2차로로 포장된 신작로로 정비돼 좁은 비포장길인 김천 우두령과는
크게 비교된다. 그런데 김천 우두령길도 내년부터 도로 편입부지 보상에 들어가 2014년이면 2차로로 확장`포장될 예정이다. 교통요충지 우두령의
명성을 되찾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길에도 흥망성쇠가 있는 모양이다.
김천`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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