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묘향암

전설처럼 남아있는 산중암자 '묘향암'

대가야고령 2011. 2. 8. 15:03

전설처럼 남아있는 산중암자 '묘향암'

오마이뉴스 | 입력 2007.07.15 16:48

 

 [오마이뉴스 임윤수 기자] 



묘향암 감로전에는 이슬처럼 톰방톰방 떨어지는 물이 넉넉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휴전선 이남에 있는 절들 중 제일 높은 해발 1500m, 지리산

반야봉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묘향암엘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하늘아래 첫 산사'로 소개를 하였던 지리산 천왕봉 아래에 있는 법계사

보다 무려 50m나 더 높은 곳에 묘향암이 있다는 사실을 며칠 전에야 알게 되어

발길을 서둘렀습니다.

남한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절, 묘향암을 찾아서
13일 새벽 4시 30분, 아직은 캄캄한 밤입니다. 발끝을 밝혀주는 불빛을 따라 기쁜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휴전선 이남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산사, 묘향암을 찾아 나서는 길입니다. 길옆에 있는 야생화가 보이고, 헛발을 디디지 않을 만큼 주변이

밝아 오니 이마에서 덜렁거리던 헤드랜턴을 끄고 아침 산행을 시작합니다.

40여분을 걸으니 노고단입니다. 안개와 구름 속으로 해는 이미 솟았습니다.

숨 한 번 크게 들여 마시고 발걸음을 계속합니다. 지리산 종주 길, 천왕봉으로

가는 주능선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길이지만 노고단에서

시작되는 주능선 길은 말 그대로 산길입니다.



▲ 파란 점선으로 된 길을 따라가면 묘향암엘 갈 수 있습니다.
 

울창한 숲에 겨우 사람하나 걸을 수 있을 만큼 난 좁은 산길입니다.

터널 같은 숲길 속으로 들어갑니다. 울창한 수풀이 아침 그늘을 드리우고,

내려앉는 안개가 시선을 가리고 있어 주변이 컴컴합니다.

둘레둘레, 주변을 살펴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울어주는 산새소리, 이슬처럼 뚝뚝 덜어지는 야생화의 싱그러움을 가르며

빠끔한 산길을 따라 걷고 또 걸을 뿐입니다.

평일이고,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길동무할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해도 떴고, 날도 밝았지만 오롯하게 보이는 건 몇 걸음 앞 산길뿐입니다.

허상에 마음 쓰지 말고, 헛된 것에 눈길 돌리지 말라는 듯 자욱한 안개장막이

갈 길만을 열어줍니다.

노고단을 출발하여 1시간 남짓 걸으니 임걸령입니다.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주먹밥으로 아침을 요기합니다.

맛좋은 물이 끊이지 않는 옹달샘이 있어 지리산을 종주하는 사람들이

휴게소처럼 잠시 머무는 곳이 임걸령입니다.

받아 마시는 물에서 쌉사래 한 산맛이 우러납니다.

돌을 다듬어 대야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 놓은 물통으로 물이 고이고,

넘은 물이 홈을 타고 구유처럼 만들어진 나무통으로 흘러듭니다.

나무통에 두 손을 담그니 등골이 싸해질 만큼 차갑습니다. '푸~푸~' 연거푸

물질을 하고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시작합니다.



시야를 가렸던 안개가 일순간에 걷히며 묘향암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스님은 마당에 뭔가를 널고 있습니다.

걷고 또 걷다보니 반야봉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지나 어느새 묘향암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몇 번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길이지만 처음 가 보는 길, 이정표도 없고

물어볼 사람을 만날 수도 없을 게 뻔한 길이니 내심 걱정입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묘향암 가는 길'

지리산 종주 길을 벗어나 묘향암으로 들어가는 길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그런 길이었습니다.

밑그림처럼 희미한 흔적은 보이는데 사람이 다닌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길이라서 그런지 발자국은커녕 떨어진 나뭇잎 하나 보이지 않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장마철이라 돌길엔 이끼가 끼었습니다.

자칫 헛발을 디디면 내동댕이쳐질 만큼 미끄러운 돌길입니다.

묵은 낙엽 사이로 희미한 이정표처럼 군데군데 사람이 다닌 흔적이 보였습니다.

나뭇잎이 무성한 여름이지만 떨어진 이파리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인적이

뜸한 길인가 봅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묘향암 가는 길, 사방이 어두컴컴할 만큼

빼곡한 숲길, 안개마저 자욱한 산길을 30여분 걷다 보니 덜컹 겁이 납니다.

알지 못하는 길을 걷는 불확실에서 오는 작은 근심입니다.



함석을 이었지만 초가 3 간을 연상케 하는 묘향암입니다. 바람이 불면 뎅그렁 거릴 처마 끝 풍경, 저녁연기가 퐁퐁 솟아오를 것 같은 굴뚝에서 산사의 풍치는 더해집니다.



법당 앞 좁은 골마루는 종각도 되고, 법고각도 되었습니다. 마루 앞에 놓인 스님의 검정고무신에서 산승의 살림이 느껴집니다.

이끼 낀 바위보다도 더 미끄러운 건 겉으로 드러난 채 물기를 머금고 있는

나무뿌리입니다.

미끄러지며 풀썩 엉덩방아를 찧고, 바위에 부딪힌 앞정강이에서 알싸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걱정이 가득해서 그런지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가도 가도

숲길입니다.

멀리는커녕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수풀입니다.

이런 곳, 이렇게 사방이 빼곡하게 가려지는 곳에 절이 있을까가

의심될 만큼 시야가 가려지는 길을 걷다보니 똑똑똑 거리는

목탁 소리가 들려옵니다.

새벽 기도 시간은 이미 지났고, 사시(9시부터 11시까지)마지를 올릴 시간은

안돼 목탁을 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지 목탁소리가 들렸습니다.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던 터에 목탁소리가 들려오니 어둠 속에서

등댓불이라도 본 듯 불안했던 마음이 일순간에 사라집니다.

목탁소리가 들리던 곳에서 얼마를 더 가니 울창한 나무 사이로 함석지붕을 인

묘향암이 보입니다.

불안한 마음처럼 눈길을 가렸던 자욱한 안개가 걷히며 전망이 드러납니다.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그런 현상이 눈앞에서 일어납니다.

이런 곳, 사방이 캄캄할 정도로 콱 막힌 산길 끝에 어찌 이렇게 탁 트인 장소가

숨어 있을까가 의심될 만큼 탁 트인 전망이 훤하게 드러납니다.

잡념 없이 걸어야 한다는 듯 조심스럽게 하던 미끄러운 바닥, 사방을 가렸던

안개가 일순간에 벗어지며 묘향암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법당에는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길옆으로 벗어나 바위로 올랐습니다. '여기서 묘향암을 보고가라'는 듯

눈길이 탁 트이는 바위에 올라 묘향암을 바라봅니다.

스님 한 분이 절 마당에 뭔가를 널고 계시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담벼락이 보입니다. 돌담인가 했더니 차곡차곡 쌓아 올린 장작더미입니다.

몇 커트의 사진을 찍고 나니 다시금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밀려옵니다.

묘향암의 법당은 부처님과 중생이 함께하는 불이의 공간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반짝 걷혔던 안개가 다시 시야를 가렸습니다.

안 보입니다. 앞산도 안 보이고 먼 산도 안 보입니다. 겨우 마당 끝에 있는

구상나무 형체만 실루엣처럼 희미하게 보일 뿐입니다.

절 마당을 지나 법당으로 들어가 참배를 올립니다.

법당에는 정면으로 관세음보살님을 모셨고, 좌우 벽에 탱화로 칠성님과

신중님을 모셨습니다.



▲ 3년째 묘향암에서 수행중이라는 호림스님은 아무도 없는 법당에서 사시 마지를 2시간 동안이나 올렸습니다.
ⓒ2007 임윤수

묘향암의 법당은 불이(不二)의 공간이었습니다.

부처님과 중생을 구분하지 않는 공존과 상생의 공간이었습니다.

부처님께 기도를 올릴 때는 기도의 공간이지만, 잠자리를 펴면 중생의

공간이 되는 생활의 공간이었습니다.

산중암자, 여의치 않은 여건에 넉넉지 않은 절집이다 보니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지만 필요할 경우 중생들에게 사용케 하는 불이의 공간이었습니다.

화엄사 산내암자인 묘향암은 함석을 이었지만 법당을 중심으로 작은 방들이

좌우에 하나씩 달린 초가 3간을 연상케 하는 구조입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해우소가 있을 뿐 여느 절처럼 다른 전각은 보이지 않는

단촐 한 구조였지만 있을 건 다 있었습니다.

법당 앞 골마루에는 범종을 대신한 소종이 달려있고, 법고를 대신해 북이

달렸을 뿐 아니라 목어를 대신한 듯 작은 목탁도 걸렸습니다.

소종을 치면 종각이 되고, 북을 칠 때면 법고각이 되는 사물의 공간이 묘향암의

마루입니다.

여름철이라 마루 한구석으로 밀려난 화로가 묘향암의 겨울 풍경을

연상하게 합니다.

법당건물 왼쪽, 암벽에 이어 단 초가지붕이 보입니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 이슬 같은 물방울이 톰방톰방 떨어져서 고이는

감로전입니다.

태고의 물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속병은 물론 울화병까지 속세의 만병

한꺼번에 낫게 해줄 것처럼 차갑고 맑은 물이 넉넉합니다.

목이 막혔을 때 마시면 매미 같은 소리가 나고, 갈증이 날 때 마시면 단방에

해갈이 될 듯한 청수입니다.

소설 속의 산승처럼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호림 스님

들어오는 길, 바위에서 보았을 때 절 마당에 스님이 널고 있었던 뭔가는

삶은 곤드레나물이었습니다. 전날 뜯어온 것을 삶아 말리느라 펼치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여름철에 뜯어 말리는 나물은 반찬이 되기도 하지만

겨울을 나게 하는 양식으로도 쓰인다고 하였습니다.

오염이라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청정산지, 뚝뚝 떨어지는 이슬을 맞고,

나뭇잎들이 부채질을 하듯 불어오는 산바람을 쐬며 산나물로 겨울 양식을

준비하고 있는 스님의 일상이야말로 동화책에서나 보았던 산승의 모습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정말 손바닥만한 땅뙈기에 조차 나물을 심었습니다.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이 담벼락을 이루고, 반찬도 되지만 양식이 될 곤드레나물이 마당에서 말려지고 있었습니다.



묘향암 감로전은 태고의 물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속병은 물론 울화병까지 속세의 만병을 한꺼번에 낫게 해줄 것처럼 차갑고 맑은 물이 넉넉합니다.

10시가 되니 스님께서는 사시마지를 시작합니다.

홀로, 스님 홀로 계시는 산중 암자의 기도니 의례적으로 대충해도 될 듯한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보아왔던 어느 마지보다 더 지극했습니다.

하기야 그렇지 않으면 혼자만의 생활이기에 수행은 커녕 생활조차 나태해 지기

십상일 겁니다.

기도는 2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이어집니다. 스님의 독경소리는 맑고도

고요했습니다.

자욱한 안개에 젖은 듯 차분하면서도, 사자후를 외치듯 우렁찹니다.

딸그락 거리는 목탁소리가 안개 속으로 펼쳐집니다.

꼬박 2시간에 걸친 기도가 끝났습니다.

3년째 묘향암에서 수행하고 계신다는 호림(虎林) 스님은

스님을 사진 찍는 것만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글을 읽게 된 독자나 불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한 마디 해달라고 요청을 해도

'수행승이 무슨 할 말이 있겠냐'며 사양하십니다.



다음을 기약할지라도 묘향암의 불향은 이어져 날이 좋으면
토끼봉, 천왕봉은 물론 멀리 남해바다까지 한눈에 보인다고 하였지만 필자에겐

부정한 마음 없이 오직 묘향암만 보고 오라는 듯 사방을 가린 그런 날씨가

되었습니다.



날이 좋으면 멀리 남해바다까지 한눈에 보인다고 하였지만 필자에겐 부정한 마음 없이 오직 묘향암만 보고 오라는 듯 사방을 가린 그런 날씨가 되었습니다.

갈 길이 멀어 내려가겠다고 하니 점심공양이나 하고 가라십니다.

배가 부르면 산길 걷기에 더 힘들 것 같아 그냥 가겠노라 말씀드리니

찰밥이니 먹고 가라고 하십니다.

스님은 사람이 그리웠던 건지도 모릅니다. 늦을까봐, 헉헉 숨이 찰까봐 그냥

묘향암을 떠나야했지만 산길을 걷는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자욱한 안개가 빗줄기로 바꿨습니다. 후두둑 쏟아지는 산비에서 오묘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향내가 우러납니다.

묘향암에서 머물던 잠시였지만 마음 속으로 스며든 산사의 향기,

남한 제일 높은 곳에 모셔진 부처님께 참배를 하였다는 이유 없는 기쁨은

발걸음에서 조차 가벼운 불향으로 다가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묘향암에서 며칠 머물며 기도를 올릴 수 있느냐고 여쭈니, 묘향암은

기도처가 아닌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라 여느 기도처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스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년여 후쯤엔 기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래도 꼭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다시 여쭈니,

사전에 연락을 하고, 머무는 동안 본인이 먹을 양식을 챙겨서 온다면 20여명

까지는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전설처럼 남아있는 산중 암자 중의 암자, 묘향암에서 기도를 올리고 싶거나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호림스님

(전화 011-604-1936 또는 0130-601-1800)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