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랑대사는
그 암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희랑조사가 머물던 곳으로서,
자연이 이루어낸 기기묘묘한 지형과 빼어난 경치로 말미암아 일찍이
금강산의 보덕굴에 비유되곤 했다.
희랑대는 이곳의 삼성전에 모셔진 독성님은 그 영험이 불가사의하다고 해서
기도처로 퍽 유명한데, 이를테면 이곳에서 기도하여 부자가 되었다거나 하는
따위의 여러 영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암자는 특히 일반 신도들에게 친근하다.
(합천 해인사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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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랑대사는 신라말기의 스님으로서 지금의 거창에서 태어나서 해인사로 출가한 분인데, 화엄학의 대가로 커다란 명성을 떨쳤다. 최치원과 시문으로 많은 교류가 있었던 그는 또한 고려 태조 왕건의 정신적인 귀의처가 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가 무너짐으로써 한민족이 다시 삼국으로 나뉘어 한창 어지럽던 무렵에, 왕건은 백제의 왕손인 월광과 미숭산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월광의 전략에 빠져들어 완전히 고립된 채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던 왕건은 해인사의 희랑스님에게 사신을 보내어 도움을 구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화엄삼매에 들어가 화엄신장들을 불러서 궁지에 빠진 왕건을 돕게 하였다. 왕건의 진영으로 쳐들어가던 월광의 군사들은 하늘에 가득히 신병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저 가운데 신령한 사람이 있음이 분명하니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 그리하여 겁에 질린 월광의 군사들은 모두 달아나 버렸다.
이 일로 왕건은 희랑 대사의 높은 도력을 더욱 흠모하게 되어 스님께서 주석 하던 해인사를 크게 중건하였다고 기록이 전한다. 해인사의 희랑대는 희랑대사가 창건하고 정진하던 기도처이며, 해인사 보장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소상은 희랑대사가 손수 자신의 모습을 따서 조성한 것이다.
희랑대사의 학통을 이어받은 스님으로 ‘보현십원가’로 널리 알려진 균여대사가 있다. 균여대사가 지은 균여전을 보면 희랑대사에 관한 짤막한 기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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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암을 내려오다 희랑대로 갔다. 입구는 확장되어 있었고 좌우측의 소나무는 품위를 더욱더 높혀준다
언덕에 자리잡은 희랑대는 어제 내린 눈으로 스님은 계단의 눈을 쓸고 계신다. 대구 보살이 가지고온 과일을 함게 이동한다
나한전이라는 안내표지가 있고. 15:00에 보살으로 부터 과일과 점심공양을 받아 먹었다. 일정을 잘맟추지 못해서 점심을 준비 못했다
스님과 보살님께 감사........
처음간 희랑대는 절벽 언덕에 건물을 짓고. 깨끗하고 품위있게
관리를 잘한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자주 찿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해인사. 지족암. 백련암. 희랑대 등 여행이 아주 좋았다
나무관세음보살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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