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갈마리 이곳 저곳

갈산 추정호님 92회 생신 갈마리 관광 (2 - 2)

대가야고령 2019. 3. 22. 22:50


3월 17일 일요일 오전

가지리 (갈마리) 마을 전체를 둘러보면서

많은것을 느끼고 생각 합니다.



<가지리(加旨里), 갈마리>

뒷산이 칡덩쿨 같이 생겼다 하여 "갈(葛)마을",

일설에는 거열성에서 신라와 백제가 싸울 때 싸움터에서 달리던 말이 목이

말라 죽은 곳이라 하여 "갈마리(渴馬里)"가 되었다고도 한다.

고려 충열왕(忠烈王 1270~1300) 때 동정 신원간(同正 愼元幹)이 개성으로부터

외가인  유씨(劉氏)를 찾아와 갈지에서 개척하였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갈지방(加乙旨坊)이었고 개화, 중촌, 갈지, 교촌(開花, 中村, 葛旨,

校村) 등 4개 마을이었다.

<개화(開花), 개화리>

칡의 가지가 지내마을에서 생겨 이 곳에서 꽃이 핀다고 하여 이름되었다.

500여년 전 문화 유씨(文化 柳氏)가 마을을 열었다고 한다. 마을 북녘에는

비석골, 북서쪽에는 거리골, 버섯나무골, 생이동골이 있다.

<중촌(中村)>

가지리(加旨里) 4개 마을에서 가운데 자리하였다고 하여 이름되었다.

<갈지(葛旨), 웃갈마리>

칡덩쿨의 뿌리에 속한다 하여 이름되었고 웃갈마리라고도 한다. 500여년 전에

만호벼슬을 지낸 인동장씨가 마을을 열었다고 전한다.

<교촌(校村), 향교>

마을에 향교가 있다고 교촌이라 하며 조선시대에는 향교동리(鄕校洞里)라고

하였다. 흔히 향교라고 한다. 지금은 거창중앙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 오리골 : 대성학교 북서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교촌에 따른 마을이다. 오리가 구릉논에 많이 놀았다 하여 이름되었으며 오류동(五柳洞)이라고도 한다.(거창군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