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일요일 오전
가지리 (갈마리) 마을 전체를 둘러보면서
많은것을 느끼고 생각 합니다.
<가지리(加旨里), 갈마리>
뒷산이 칡덩쿨 같이 생겼다 하여 "갈(葛)마을",
일설에는 거열성에서 신라와 백제가 싸울 때 싸움터에서 달리던 말이 목이
말라 죽은 곳이라 하여 "갈마리(渴馬里)"가 되었다고도 한다.
고려 충열왕(忠烈王 1270~1300) 때 동정 신원간(同正 愼元幹)이 개성으로부터
외가인 유씨(劉氏)를 찾아와 갈지에서 개척하였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갈지방(加乙旨坊)이었고 개화, 중촌, 갈지, 교촌(開花, 中村, 葛旨,
校村) 등 4개 마을이었다.
<개화(開花), 개화리>
칡의 가지가 지내마을에서 생겨 이 곳에서 꽃이 핀다고 하여 이름되었다.
500여년 전 문화 유씨(文化 柳氏)가 마을을 열었다고 한다. 마을 북녘에는
비석골, 북서쪽에는 거리골, 버섯나무골, 생이동골이 있다.
<중촌(中村)>
가지리(加旨里) 4개 마을에서 가운데 자리하였다고 하여 이름되었다.
<갈지(葛旨), 웃갈마리>
칡덩쿨의 뿌리에 속한다 하여 이름되었고 웃갈마리라고도 한다. 500여년 전에
만호벼슬을 지낸 인동장씨가 마을을 열었다고 전한다.
<교촌(校村), 향교>
마을에 향교가 있다고 교촌이라 하며 조선시대에는 향교동리(鄕校洞里)라고
하였다. 흔히 향교라고 한다. 지금은 거창중앙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 오리골 : 대성학교 북서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교촌에 따른 마을이다. 오리가 구릉논에 많이 놀았다 하여 이름되었으며 오류동(五柳洞)이라고도 한다.(거창군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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