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 산악회

19년 2월 (73차) 문화원 산악회 "선유도 여행" 2 - 2

대가야고령 2019. 2. 11. 22:24

대장봉에서 하산하여

대장도 대장교 (장자도와 연결)를 건너서

장자교 구)다리를 걸어서 선유도에 갑니다.



장자도(앞) - 대장도(뒤) 연결 대리 (인도 차도 구분 되어 있네)

장자도-선유도 연결  구)다리. 현재는 보행자 전용 (위. 아래)


장자도  구)다리에서 바라본 대장도의 대장봉 (위)  장자대교 (아래)





  "초 분"

명사 민속 서남 해안이나 섬에서 송장을 풀이나 짚으로 덮어 두는

장례 방법. 3 내지 10 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살이 썩은 뒤에

뼈를 골라 시루에 쪄서 땅에 묻는다.              






선유도 - 무녀도 연결하는 선유교 앞 주차장

 

선유교에서 바라본 선유도 망실봉 맟 갯벌 (위. 아래)


선유도 유람선 선착장




선유교 및 우측에는 구)선유교

운  최치원

고군산 군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섬으로 신라초기에 본 신시도 주변에 풍성한 청어를

잡기 위하여 김해김씨가 처음으로 입주하여 사람이 살기 시작 하였다. 

신시도는 신라시대의 대학자로 명성을 떨친 최치원선생이 일시나마 살았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선생이 신시도를 찾게 된 연유는 옥구군 옥구면에서 한동안 서원을 차렸을 때 해변가인

하제에서 서해를 바라보다 신시도의 우뚝 솟아있는 월영봉을 쳐다보고 곧바로 명산이라

고 칭찬을 하면서 뗏목같은 풍선(風船)을 타고 신시도에 도착 월영봉에 올랐다는 것이다.


최치원선생의 자는 고운 또는 해운이라고 부른다. 월영봉에 오른 고운은 그곳을 월영대라 칭하고 돌담을 쳐 거처를 만들어 놓고 때로는 생식을 하며 글을 읽었다고 한다. 

해발 199m 인 월영봉은 선유8경의 하나로 가을이면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단풍은 장관을 이룬다. 주민들은 너나없이 한폭의 동양화를 대표한다고 한다.


신시도 주민들이 이 월영대를 찾아 글을 읽은 최치원선생의 자가 고운이었음에도 해운이라는 자하나를 지어 부르게하여 신시도를 영원히 연상케 했다고 한다. 최치원 선생의 글 읽는 소리가 중국 남경까지 들렸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올 만큼 큰 소리로 글을 읽기도 하였지만 주변의 공기가 맑고 깨끗한 자연속에서 고독과 외로움을 잊어버리고 자연을 벗삼아 생활하였음을 의미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때는 신시도 마을 청년들이 고운의 뜻을 기리고 지키기 위하여 고운이 글 읽었던 곳에 흔적이 남아 있는 돌담을 손질 보존하고 있을 정도로 고운이 이섬에 살았던 것을 마을사람들은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군산시청 홈페이지)


선유교 옆 선유1리 앞 교차로. 마을 입구 진입로









선유1리 섬 둘레길 시작 지점








선유1리 몽돌 해수욕장 (흰 돌)  위.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