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읍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보면 항상 6인승 밴 같은 차량을, 교통에 방해되지 않을
만한 곳에 정차시켜놓고 거기서 건빵을 파시는 아저씨가 계신다.
좀 외진 곳이라 건빵이 과연 팔릴까, 차라리 가까운 고령 ic 로 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늘 스쳐지나가다가
일전엔 작업실에서 뭔가 주워먹을 건 필요하고, 그렇다고 해서 팜유기름에 쩔고 입천장을 긁어대는 과자나 라면 같은 걸 쟁여놓는거보다 건빵이 훨 낫겠다 싶어서 이 곳의 건빵을 사게 되었다.
요즘은 중소기업의 먹거리가 대기업것들보다 더 믿을만하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고...
나는 건빵을 한 푸대-_-; 사서 오토바이에 실으면서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아저씨, 왜 항상 이곳에 계세요? 읍내나 고령 ic 처럼 사람 많은 곳에 가시는 게 장사
더 잘되지 않아요?'
'우리 집이 이 근처거든. 그냥 소일거리삼아 파는거지 뭐. 더 멀리 가봤자 기름값도 아깝고, 내가 여기 있는 거 아는 사람들은 종종 사갖고 가.'
'그러시구나. 전 안화리 살아요.'
'가깝네. 나도 원랜 여기 공단에서 일했었기땜에 여기서 살게 됐는데 이제 나이가 많다고 써주질 않더라고.'
아저씨는 씁쓸하게 웃으시더니 내가 오토바이에 건빵푸대 싣는 걸 도와주셨다.
'아우, 아저씨 제가 해두 되요. 힘드실텐데 뭐하러 일어나셔서...'
'아냐. 이게 뭐 별 거라고.'
아저씨는 오토바이에서 내가 멀리 튕겨져나갈 만큼 큰 사고가 나도 건빵 푸대만큼은
절대로 오토바이에서 이탈되지 않을 만큼 매우 야무지고 꼼꼼하게 고무끈을 동여매어
주셨다. 나는 거듭 감사하다고 했다.
건빵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비록 고령에서 생산되는 건 아니지만, 쉬 질리지도 않고 씹을수록 구수한 게 되게 바쁜 날엔 이거랑 우유랑 단백질보충제, 발효액 같은 걸로만 버티기도 했다.
근데 먹을 때마다 아저씨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한 때 공단에서 일하셨었고, 은퇴하셨다는 말.
나는 아저씨가 좋은 분이신지 아닌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이전에 공경을 받아야 할
어르신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어르신들께 충분한 대접을 못 해드리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내놓고 이 분들을 소외시킨다.
그렇게 생각하니 건빵이 마냥 달지만은 않았다.
말 난 김에 또 빡치는 얘기 하나.
귀농해서 생겨난 버릇인데, 나는 아무 어르신에게나 닥치는대로 인사를 드린다.
안면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마구잡이로 인사한다.
귀가 잘 안 들리셔서 못듣고 지나치실 땐 아주 그냥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서라도
기어이 인사를 드린다.
근데 인사를 드리면 종종 어르신들이 고맙다고 한다.
아나 세상에 고마우시댄다. 대체 뭐가요. 고작 인사일 뿐인데요. ㅠㅠ
일테면 이런 식이다.
'안녕하세요.'
'...누고?'
'아, 그게;;; 전 그냥 저기 안화리 사는데 잘 모르지만 인사 한번 해 봤어요.'
'난 또 인사하길래 아는 안가 하고 한참 봤네. 아가씨 고맙다.'
'엉...;; 뭐가요?'
'모르는데도 이래 인사해주니까 고맙지, 안 고맙나.'
'어르신이 지나가시는데 잘 몰라도 인사드리는 게 당연하죠.'
'아이구, 요즘 그런 사람 없다. 아가씨가 참 착하네.'
고맙다에 이어 착하다 콤보. 난 대체 뭘 했다고 이런 대다난 칭찬을 듣는 것인가.
는 요즘 사람들이 하도 나이 있으신 분들을 쌩까고 지나가니까 그런거.
사실 나는 위계질서 별로 안좋아한다. 선배라고 연장자라고 덮어놓고 인사해야 하고 받는 문화도 싫어한다. 근데 지금은 인사라는 어설픈 방법으로라도 무너진 균형을 어떻게 해 봐야 하지않나 싶을 정도로 뭐가 많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구매력이 있는 연령대에게 사회 대부분의 초점이 맞춰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덕에 특정 나잇대가 엉겁결에 주류고 대세가 되어서는 그 외 연령대의 사람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일 또한 어느 정돈 할 수 없다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래왔었으니까.
근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가버렸다고 해서 그 상황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다. 아무리 소외인지 왕따인지가 전국구급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거기에 무감각하게 동참한 게 잘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린 모두 공범이다. 고작 인사 정도 하고 다닌다고, 내가 그 공범의 범위에서 딱히 벗어나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 진짜로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내 나이또래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들 외엔 정도만 다를 뿐 다 한 통속이고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까 인사드렸다고 고마워하지 마시라고요... 괴롭다고요 ㅠㅠ
인사 안 하는 사람들더러 인사하라고 촉구하느라 글 쓰는 거 아니다. 그냥, 우리에겐 어버이 세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인식이라도 했으면 싶어서 해보는 소리다.
노인자살률 같은 극단적이고 끔찍한 일례를 들어본들 개선되지 않을뿐더러, 그런 거 하고싶지도 않다. 사람이 퍽퍽 죽어나가도 니네 관심도 없지? 하고 닥달하는 것도 기분나쁜 일이고 다른 세대의 목숨과 관련된 통계를 무기삼는 거 지나친 오지랖인데다 어떤 의미에선 모욕일수도 있다.
거듭된 소외에, '차라리 명을 달리 한다 해도 너네 젊은 세대한테 관심구걸은 안해.' 가 어르신들의 기본적인 입장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면 그렇게 생각하겠다.
한 때 기적같은 경제성장을 이뤄가면서도 이렇다할 노후준비 없이 자식들 공부시키기에 바빴던 어르신들은
이제 고스란히 짐 취급을 받고 계시다. 이거 이분들 탓인가? 난 모르겠다. 그러게 좀 더 약게 구시지 그러셨어요, 라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다.
이건 설 건드릴 수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화두다. 공부, 고뇌, 실천이 결여된 맹비난이야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도 그 중 하나가 아니라고 못하겠다. 스스로가 고작 인사로 대충 눙치고 '아 우리 세대는 이래서 안돼' 하며 개념있는 척 하는 거 같아 좀 역겹단 생각까지 든다.
난 그저 최소한 울 엄빠만이라도 기죽지 말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리고 그걸 위해선 돈이 어쩔수없이 필요하다. 결론이 이렇게 나서 화가 난다.
어디선가, '삶이 온전히 타인의 동정에 달려있다는 것은 모욕이다' 라는 걸 읽은 적 있다. 기억에 의존해서 쓰다 보니 되잖은 비문이 되버렸는데 뭐 뜻은 대충 통하니깐... 암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종류의 모욕이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있단 게 속이 쓰리다.
건빵아저씨로 시작해서 중간에 삐딱선 타더니 결국 또 이런 얘기... 노인 복지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꿀밤맞을 퀄리티네.
암튼 어르신들 기죽지 마세여! 아무리 우리가 잘난척해봤자 어차피 세월 앞에서는 다 똑같거든여! (담촌 장마을에서 이사 왔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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