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골 치사리 벽화고분

대가야고령 2014. 10. 21. 19:50

 

고령군 대가야 유적지! 고아동 벽화고분

고령군은 대가야 유적지 등 문화재가 많은 곳으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고령 군민은 물론 외지에서도 많이 찾아 와서 구경을 하고 가는데요.

저도 고령읍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고야동에 있는 벽화 고분을 탐방하였습니다.


고아리 고분벽화를 보러 가기 전에는 유적지를 탐방하러 온 사람들이나 동네 주민들을 위해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공원이 조성 되어 있었습니다.
"대가야 조선 소지"라는 비석이 있는데, " 대가야 시대에 배를 만들어 회천에서 낙동강을 지나 교역을 활발히 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공원 한쪽에는 고아동 벽화고문에 대한 설명이 사진과 함께 간판에 씌여져 있어 벽화고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솔내음이 향긋한 숲길,
잘 정비 된 계단을 따라 올라 가다 보면 우거진 숲에서 새들이 노래하며 반갑게 인사를하고, 찔레꽃과 이름모를 화초들 속에서 나비와 벌이 길을 안내 해 줍니다.

저 계단만 올라 하늘을 쳐다 볼 즈음, 산만한 카다란 여러 개의 고분이 눈에 나타납니다.
산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푸른 소나무가 고분들을 감싸고 있었고,
고령군에서 손님맞이 준비로 많은 사람들이 고분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큰 무덤이 대가야 시대의 왕의 무덤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는데요.
고분 앞 표지 판에는 벽화고분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사진으로 내부 무덤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대가야 유일의 벽화고분으로 6세기 경에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무덤 모양은 터널형으로 벽면과 천장에 회칠을 하고 다양한 색으로 주로 연꽃벽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현재에는 11개 정도의 연꽃모양이 뚜렸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니,
그 당시의 염료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발견당시에는 일제에 의해 도굴 된 상태라고 하니 아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큰 무덤을 한바퀴 돌아 보았습니다.
대가야 시대의 생활상과 왕의 권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무덤만 봐도 짐작 할 수 있었습니다.
고분 입구에는 문이 굳게 잠겨 있었는데요.
고분을 보호하기 위해서 출입을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왕릉 옆에는 크고 작은 고분들이 있었는데요.
왕을 보필하던 사람들의 무덤인 것 같았습니다.
지금 고령에는
휴일이나 여름 휴가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고령을 방문 할 것을 대비해서 고분과 고분 주변을 맑끔하게 새 단장하고 있었습니다.
고령군에서는 귀중한 대가야 유적지를 잘 관리하고, 소중히 여기고 있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령 주민들의 정성으로 관리되고 있는 "고아리 고분 벽화"에서 온 가족이 함께 역사 공부도 하고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고령으로 놀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