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八臺-地名에 나타난 불교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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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24 11:34:25
- 조회 (606) | 추천 (1) | 퍼간사람
bsb2001
[다음 글은 부산 미륵사 주지스님이시던 백운(白雲) 스님이 1988년 10월1일 불교잡지 불일회보(佛日會報)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전해 내려오던 지리산 관련 역사 혹은 이야기와는 다소 다른 것이 있습니다만, 나름대로의 논리와 의미를 지닌 글이라 여겨지며, 특히 문수보살과 관련한 지리산 여러 곳의 지명 해석에는 예전에 볼 수 없던 독특한 내용이 들어 있는 듯합니다. 재작년, 약 20년 전 지면(紙面)을 통해 나왔던 기록을 뒤늦게 발견하고 흥분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뒷날의 공부를 위한 자료로 삼고자 기고문을 편집하여 이곳에 옮겨놓습니다. 전편에 이어 화엄사(華嚴寺)의 스님이시던 진응선사(震應禪師)의 지리산지(智異山誌)를 번역한 글이 이어집니다./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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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과 불교-2
♣글/白雲/스님. 부산 미륵사
길상봉(吉祥峰) 아래에 대화엄사(大華嚴寺)가 있는데 그 예(例)는 지나(支那)의 청량산(淸凉山-五臺山) 대화엄사(大華嚴寺)와 같다.
또 길상봉 아래에 문수동(文殊洞)이 있고 동문(洞門)에 구만리(九萬里)가 있으며, 문수동과 마주 보는 백운산(白雲山) 기슭에 오봉산(五峰山)이 있고 길상봉에서 서로 바라보는 곳에 무착대(無着臺)가 있으며 또 길상봉 건너편 쪽에 칠불암(七佛庵)이 있다.
위에서 말한 무착선사(無着禪師)가 오대산(五臺山)엑 들어가 문수대성을 친견(親見)한 까닭으로 무착대가 있으며, 위에서 말하기를 문수보살이 팔만 권속으로 더불어 항상 머무시며 설법한다고 운운 하였는데 문수화신[化身]인 일만 문수에 또한 팔만 권속이 있으므로 모두 합하여 구만이 되는 까닭에 구만리(九萬里)가 있는 것이다.
현금(現今)에 지리산 상봉을 천왕봉(天王峰)이라 일컫고 상봉 아래의 신사(神社)를 성모사(聖母社)라 칭하는 것은 고려(高麗)시대의 박전(朴全)이 지은 용암사기(龍巖寺記)에 이르기를 「지리산 주인은 성모천왕(聖母天王)이다」라고 한 까닭이며 또 성모천왕이라 이른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이른 바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유(類)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내 소견으로 헤아리건대 또한 까닭이 있을 듯하다. 즉 지리산신(智異山神)은 곧 문수의 화신(文殊化神)이요, 문수는 칠불(七佛)의 조사(祖師)라 뜻이 칠불의 어머니와 같은 까닭으로 성모(聖母)라 이른 것이며 혹은 반야(般若)는 제불(諸佛)의 어머니이므로 성모(聖母)라 이른 것이다.
또 천왕(天王)이라 일컬은 것은 문수대성이 혹은 천왕신(天王神)을 나툰 까닭이요, 또 세상에 전해오는 바에 지리산신은 늙은 할미로서 몸을 나투는 까닭으로 길상봉(吉祥峰)을 또한 노구봉(老軀峰)이라 칭하며, 천왕봉 아래에 또 성모사(聖母社)가 있다고 운운한 것은 어찌 문수화신(文殊化神)이신 떡 파는 노파를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위와 같은 두찬(杜撰:잘못 지음)은 안목을 갖춘 이의 큰 웃음거리를 면키 어려운 바이지만 그러나 다만 현금(現今)의 어리석은 지아비와 지어미네가 칭호하는 실제를 의거하여 기술한 것이요, 애초에 그 사이에 억설(臆說)한 것은 없노니 오직 바라건데 군자(君子)는 한 번 열람하면 다행이겠노라. 운운…』(이상 번역 부분 끝)
이상이 진응(震應)선사께서 쓰신 지리산지(智異山誌)의 전반내용(前半內容)이거니와 실로 지리산은 문수대성의 근본도량인 청량회상(淸凉會上)이다.
지리산은 열 두 고을(12個郡)과 접경을 이루고 둘레는 무려 팔 백리나 되며 해발 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만도 삼백 여 봉이나 되는 한국 최대의 명산이다. 지리산은 어느 골짜기든 숲과 물이 풍부하며 이른바 육산(肉山)이어서 설악산처럼 험하지도 않다.
지리산에는 가장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자리로서 여덟 군데를 치는데 이를 소위 8대(八臺)라 한다. 팔대란 만복대(萬福臺), 석종대(石鍾臺), 문수대(文殊臺), 무착대(無着臺), 묘황대(妙皇臺), 보옥대(寶玉臺), 무주대(無住臺), 도솔대(도率臺) 등이 그것이다.
만복대는 길상봉 북쪽에 있는데 천은사(泉隱寺)를 창건하신 덕운조사(德雲祖師)의 수선지지(修禪之地)이고 석종대(石鍾臺)는 길상봉(노고단) 서편의 문수봉 아래에 있는데 백제(百濟) 말기에 문수대성께서 길상동자(吉祥童子)와 함께 노승과 동승으로 나투어 주석하신 도량이다.
문수대(文殊臺)는 길상봉 아래에 있는데, 옛날 원효(元曉).의상(義湘)의 두 도인이 계셨던 도량이니 지금도 도량 안에 원효대.의상대의 두 암자 터가 남아 있다. 무착대(無着臺)는 반야봉(般若峰) 남쪽인 피앗골로 유명한 연곡사(燕谷寺) 뒷편에 있는데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이 여생을 보내다가 입적(入寂)한 도량이다.
묘황대(妙皇臺)는 일명 묘향대(妙香臺)로서 반야봉 아래의 뱀사골 윗편에 있는데, 화엄사 창건주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주석하신 도량이고, 보옥대(寶玉臺)는 일명 옥보대(玉寶臺).옥부대(玉浮臺)라고도 하는데, 원래의 이름은 보옥대이니 가락국(駕洛國) 시조 김수로왕(金首路王) 시대에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에서 건너온 보옥조사(寶玉祖師)께서 김수로왕의 칠 왕자를 제자로 맞아 여기에서 수도하여 제자들이 성불하였으므로 절 이름을 칠불암(七佛庵)이라 하였다.
무주대(無住臺)는 지금의 상무주암(上無住庵)이니 고려의 보조국사(普照國師)께서 주석한 뒤 나라에서 상(上)자를 붙여 상무주(上無住)라고 이름하게 되었고, 도솔대(도率臺)는 청매조사(靑梅祖師)가 여생을 마친 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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