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일지

지리산 "무주대"

대가야고령 2011. 2. 13. 21:01
Re:무주대| ♡ 지리산365(F A Q) ♡
방장산 조회 172 |추천 0 | 2001.03.31. 13:05

지리산에는 수많은 대(臺)가 있습니다.

무엇을 대(臺)라고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거대한 병풍바위아래 풍광이 좋은 넓은 터가 있는 곳을 대개 대(臺)라고 부르는데, 기(氣)가 많이 모이는 곳인 지 수도처로 많이 이용되더군요.

지리산 10대니 하면서 무언가 나름의 의미를 두고 신비화하는 경향도 있지만 지리10경이라는 말이 어느산악회(두류산악회)에서 나왔듯이 지리10대라는 말도 그저 갖다붙이는 말에 불과할 뿐이지 어떻게 으뜸의 10대를 따로 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암튼 지리산의 그 많은 대(臺) 중에서 무주대라는 곳이 있는데 상무주 하무주가 있어, 상무주의 암자를 상무주암이라고 합니다.

사월초파일, 일명 부처님오신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암자출입을 막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래도 근처 암자들 중에서 시주가 가장 많이 들어온다는 군요.

그래서 초파일이면 근처 어느 암자보다 푸짐하게 먹을거리를 내어 줍니다.

상무주암에서도 많은 길이 있어 영원사를 거쳐 삼정으로 하산하는 길과 상무주암에서 곧장 삼정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고, 문수암 삼불사를 거쳐 도마(마천)로 하산하는 길은 거의 비단길이라 불리워도 좋을만큼 부드럽고 완만한 길이라 흔히 말하는 암자산행길은 바로 이 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삼정산을 거쳐 실상사로 바로 하산하는 길도 있고, 영원재를 거쳐 와운, 뱀사골로 내려가는 길도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길입니다. 한 번쯤만...왜냐면 이 길은 그다지 풍광이 좋은 곳도 없으면서 엄청 길고 지루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상무주 : : : :

영원사~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의 네 개 사암을 연결하는 길은 산행 코스라고 하기보다 '사색의 길'이다. :

상무주암 바로 뒤의 삼정산 정상은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로서 하봉~천왕봉은 물론 천왕봉~반야봉의 주능과 만복대~바래봉의 서북릉까지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다. : 또 양정마을에서 출발하여 군자리까지 이르는 다섯시간 가량의 산행 코스 전체의 경관이 빼어나고 산길도 아주 평탄하여 이상적인 등산코스임에는 틀림이 없다. :

 

가족끼리 또는 다정한 친구와 함께 걸어가기 안성맞춤인 지리산의 가장 이상적인 산행루트이다. : 기자도 지리산의 많은 등산로 가운데 이 곳을 특별히 좋아하는데 이 길은 단순한 산행이나 하이킹의 즐거움만 생각하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울만큼 사연이 깃들어 있어 저절로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

 

그래서 기자는 이 길을 단체산행을 하며 떠들고 지나가야 하는 그런 등산로가 아니라 혼자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가거나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가지고 쉬었다 가고 또 쉬었다 가는 그런 '사색과 명상의 길'이라고 생각해 왔다. :

 

영원사에서 상무주암까지는 아주 천천히 걸어서 가더라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 영원사에서 30분 가량 경사길을 오르는 데 좀 힘이 들지만 그 다음에는 평탄한 길이다. : 영원사 서쪽 계곡을 건너 이어진 길은 영원재를 거쳐 와운마을로 가는 길이다. : 따라서 계곡을 건너기 전에 북쪽으로 들어서는 길을 따라가는 하며 고개에선 바른편(동쪽)길이 상무주암과 삼정산을 찾는 길이다. :

 

영원사에 얽힌 일화를 살펴본데 이어 이번에는 상무주암의 얘기를 알아 볼 차례이다. : 삼정산 정상을 머리에 이고 있는 이 암자는 예로부터 두 사람이 살면 한 사람이 호식을 당한다는 전설과 함께 현재까지도 스님 한 분만이 살며 외부 손님을 재워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 "허허, 그런 말을 믿습니까. 수도하는데 방해가 되고 또 객이 들면 불편하니까 그런 말을 했겠지요. : 특별한 인연이 없는 한 아랫마을에 가서 묵으라고 권할 따름이지요." : 암자를 지키고 있는 스님은 그저 웃기만 한다. 상무주암에는 2미터 높이의 석탑 받침돌과 옥개석 옥신석 몇 개만 남아 있다. : 일찍이 보조국사 전각국사가 이 곳에서 수도했고 대혼자 무기란 특이한 스님이 머물던 곳으로 그들의 많은 일화가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가슴깊은 곳에서 어떤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 :

 

 숨어 살았던 스님 : : 고려 불교의 기둥이었던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사찰로 많은 국사를 배출한 조계산 송광사는 전신이 수선사로 제1세조는 보조국사, 제2세조는 그의 제자 진각국사이다. : 보조국사는 일찍이 지리산의 상무주에서 오랫동안 수도하였다. : 그는 대혜의 어록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

 

"선은 고요한데도 있지 않고 또한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 해와 달이 고른 곳에도 있지 않고 또한 생각을 깊이 갖고 분별을 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 : 보조의 제자 진각(혜심)은 지리산에 많은 발자취를 남긴 인물인데 산청군 단성면 단속사의 주지도 했다. : 그가 상무주에서 동쪽으로 빤히 건너다보이는 금대산 금대암에서 수도할 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은 글이 일러 준다. :

 

"한 수도승이 금대암에 있다. 대 위에 고요히 앉았는데 눈이 내려 정수리에 소복하게 쌓였다. : 그런데도 마른 등걸처럼 오똑이 앉아 움직이지 않으므로 절의 대중이 죽었나 의심하여 흔들어 보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 그가 공부에 전념함이 이와 같았다. 도를 위해 정진함이 이와 같았으니 생사를 초월하지 않고서야 누가 그처럼 할 수 있겠는가." :

 

진각국사 헤심이 57세로 시적한 다음 해인 고려 고종 22년 이규보가 비문을 짓고

송광사 도량에 세운 비석에 세운 글이다. : 세상의 스승 지눌이 수선사 주지 자리를 그에게 물려 주려고 하자 궂이 사양하고 지리산으로 들어와 상무주암에 숨어 살았다. : 이 암자의 호식설도 다른 이를 만나고 싶지 않아 꾸며 댔던 그에게서 연유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

 

상무주암으로 오르는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가면서 높은 자리도 마다하고 이 암자에 오랫동안 혼자 숨어 살았던 진각 혜심의 <산중길>이란 선시를 읊어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명상의 길'을 걷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산길은 끝도 없으나 한없는 맑은 바람 걸음마다 일어나고 : 천봉 만봉을 두루 밟고 다니는데 : 한 줄기 상수리나무가 이리 저리 얽혀 있네 : 시내에서 발을 씻고 산을 보면서 눈을 맑히네 : 부질없는 영욕을 꿈꾸지 않으니 이 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랴." : : : 누더기 한벌로 30년 : : 고려때 지리산을 누볐던 또 한명의 괴짜 스님을 상무주암을 찾으며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 그가 이 암자에서 시 한 수를 지어 준 것이 지금도 전해 오기 때문이다. :

 

'이 오름에 본래 머물 데는 없었는데/그 누가 이집을 세웠네/지금은 오직 무기(스님이름)가 있어서/가기도 머물기도 거리낌이 없어라.' : 이 스님은 무이 혹은 무기로 불렸는데 호는 '크게 어두운 사람'이란 뜻의 대혼자이다. 그에 대한 기록이 최자의 보한집에 수록돼 있다. : '중 무기는 호를 스스로 지어 대혼자라 하였다. 그는 지리산에 은신하여 30년을 장삼하나 벗지 않고 지냈다.

 

해마다 겨울과 여름 뱃가죽을 띠로 졸라매었고 봄과 여름에는 배를 두드리며 산을 유람했는데 하루에 서너 말의 밥을 먹어 치웠다. : 한 자리에 앉으면 열흘을 넘고 일어나서 갈 때에는 선시를 소리 높여 불렀다. 지리산 곳곳에서 절이 일흔을 넘는데 한 절에서 유숙할 때마다 반드시 선시 한 수씩을 남겼다.' :

 

그 선시 한수를 상무주암에도 던져 준 것이다. :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군가. 무엇이 마땅찮아 산중에 파묻혀 살며 '어떤 자가 집을 세웠건 말건 오직 내가 들랑거리기에 거리낌이 없어라'는 불만을 눌러 표현했을까.---- 한편 생각해보면 이 사람이 진각이 아니었던가 싶어진다. : 진각의 자가 영기였고 호는 무의자이기 때문이다." :

 

김경렬옹이 그의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에서 제기한 의문이다. 그러나 화개녹산차회는 혜심스님과 대혼자 무기스님이 차 때문에 자주 만나 교류를 했다고 주장했다. : 혜심이 금대암에서 정진할 때 무기가 그를 찾아가 차를 동냥했다는 것이다. :

 

또 무의자는 대혼자에게 차시 한 편을 지어주었다는 것. : "크게 어두운 곳에서 잠 이룰까 두렵나니 향기로운 차 자주자주 끓여야지." : 무의자가 무기스님의 호 대혼자를 비겨 지은 시로 그 뜻이 깊어 보인다. : 상무주암을 찾으며 고려 당대의 고승과 은거스님이 차로써 교류했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 또한 뜻 있겠다. : : : :

 

이 부분을 읽고서 선시를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 그냥 심심해서 한시를 조금 읽은 적이 있지요.. 선시와는 다르겠지만 정신을 차분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더군요... 선시를 구해서 읽어 봐야겠습니다.. 맘에 와 닿는거 있으면 하나 적어서 암자산행할때 산에서 읽고 조용히 느껴봐야겠습니다.. 참 넉넉한 저녁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