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산악회

합천 쌍책 외초 산성산을 가기전 산행기를 읽고 갑니다.

대가야고령 2016. 2. 20. 16:47


(국제신문 근교산행기)


지리산 천왕봉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경관을 보고 싶다면 어느 산으로 가야 할까. 서부 경남의 여러 산들이 저마다 앞다퉈 손을 들 수도 있겠지만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감히 경남 합천과 의령군의 경계에 솟은 산성산(山城山·741.4m)을 추천한다. 억새 허드러진 정상에서든, 아니면 기암괴석 즐비한 상투바위전망대에 앉아서 보든 이 산의 어떤 장소에서라도 좋다.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경남 합천 쌍백면 소재 산성산 상투바위전망대에서 지리산 천왕봉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장면을 감상하고 있다. 봄 진달래, 가을 억새로 유명한 산성산 서쪽 사면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천연요새를 구성하고 있다.

해질녘 지리산 천왕봉으로 저무는 해를 따라 구름이 몰려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 기막힌 풍광에 압도 당할 수밖에 없다. 속세의 온갖 시름도 저 해와 함께 지리산 너머로 훌훌 날려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하다. 산성산은 그런 산이다. 봄이면 진달래 군락지를 이루는 산성산 정상부는 가을이면 '억새의 바다'로 변한다. 또 능선의 서쪽은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들이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우러져 선경(仙景)을 이루기도 한다. 가깝게는 자굴산과 한우산이 보이고 멀게는 지리산, 둔철산, 황매산, 악견~금성~허굴산 능선, 남산제일봉, 가야산, 화왕산, 비슬산 등 명산들까지 한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조망 또한 빼어나기 그지없다. 산행 코스가 그렇게 길지도 않고 길도 평탄해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과 함께 가족산행을 하기에도 딱 좋다. 

사실 산성산은 크게 보면 의령 자굴산(897m) 자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진양기맥의 중요 봉우리이기도 한 자굴산은 누가 뭐래도 의령의 진산이다. 때문에 자굴산 서북쪽으로 뻗은 산맥상에 솟은 한우산(寒雨山·일명 찰비산·836m)과 산성산도 한 묶음으로 '의령의 산'으로 통한다. 대부분의 산꾼들은 주로 산성산과 한우산을 묶어 의령군 궁유면 벽계리 벽계유원지를 기점으로 하는 산행을 즐긴다. 하지만 자굴산과 한우산은 확실한 의령의 산인 반면 산성산은 합천과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의 서북쪽인 합천군 쌍백면에서 봐야만 '산성(山城)'으로서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합천의 산', 또는 '쌍백의 산'으로 표현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이 산의 정상석도 합천군 쌍백면에서 세웠다.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취재팀은 합천 쌍백면의 외초리 내초마을을 들머리 겸 날머리로 삼은 산성산 답사에 나섰다. 내초마을 주차장은 승용차 200여 대는 족히 세울 만한 넓은 공터다. 총거리 7㎞에 달하는 원점회귀 답사 코스는 지난 2007년 쌍백면사무소와 면민들이 노력해 등산로 정비작업을 마무리했다. 코스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내초마을 주차장~송림~외초마을~중촌갈림길~큰재만당(각수재)~굴샘 입구~굴샘~굴샘 입구~산불감시초소 앞~동이덤~헬기장~산성산 정상~상투바위전망대~찰비재(하산 갈림길)~쉼터~임도~주차장 순. 걷는 시간만 3시간, 휴식과 풍경 감상 등을 합쳐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내초마을 주민들이 가을걷이 한 나락을 말리고 있는 주차장 한쪽 귀퉁이에 등산 안내판이 있다. 일별하고 그 왼쪽의 송림(松林)으로 향한다. 100여 그루의 고풍스런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임도를 따라 외초마을로 진입한다. '등산로' 이정표가 곳곳에 설치돼 있어 길찾기는 수월하다. 앙상한 감나무에 빨갛게 익은 홍시가 먹음직스럽게 달려 있다. 3분 후 외초마을 임도가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이다. 무덤을 지나 어파마을 분기점에서 '산성산 2.2㎞' 이정표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직진한다. 맨발로 걸어도 될 만큼 포근하고 매끈한 흙길이다. 기온이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도 숲에는 초록빛 여운이 남아 있다. 

   
산행 기점인 합천군 쌍백면 외초리에서 바라본 산성산.

몇 개의 무덤을 지나 20분쯤 완만한 숲길을 따라 오르면 능선 삼거리. 능선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쌍백면 평지리 중촌마을 쪽으로 가는 길이다. 1970~80년대 쌍백초등학교 학생들이 산성산(당시에는 자굴산으로 불렀음)으로 소풍 갈 때 이용한 길이기도 하다. 오른쪽 정상 방향으로 향한다. 능선 사면을 따라 20분가량 가면 큰 산줄기의 안부 사거리인 큰재만당 갈림길에 닿는다. 백두대간 남덕유산에서 갈라져 월봉산 금원산 기백산 황매산 자굴산 등을 거쳐 진양호에 이른다는 진양기맥 주능선에 오른 셈이다. 앉아 쉴 수 있는 벤치 몇 개가 드문드문한 억새 사이에 놓여 있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꾀꼬리등'을 거쳐 한티재로 이어지고, 올라온 길 맞은편으로 내려서면 의령군 궁유면 벽계유원지로 갈 수 있다.

진행 방향은 '산성산 1.1㎞' 이정표 방향인 오른쪽. 등산로 양쪽의 가을 야생화들이 운치를 더한다. 산불감시초소 입구를 통과해 굴샘 입구까지는 15분쯤 걸린다. 왼쪽 110m 지점에 있는 굴샘은 절벽 아래 작은 굴에서 석간수가 흘러 나오는 약수터다. 주변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석간수 한모금 마시고 뒤돌아보면 의령 벽계리의 왕다실골이 내려다보인다.

   
큰재만당에서 산성산 정상으로 향하던 중 만나는 굴샘.

왕다실골이라는 이름은 산성산과 연관이 있다. 조성 연대가 확실치 않지만 가야시대 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벽계산성에서 산성산의 이름이 비롯됐다. 삼국시대 이곳은 백제의 침공에 맞선 신라군의 중요한 방어진지였다.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고 신라 애장왕이 아끼던 부마가 한 전투에서 전사하자 애장왕이 직접 출정,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그런데 왕이 직접 지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성을 빼앗겼기 때문에 왕다실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다시 굴샘 입구에서 산행로를 계속 따르다 보면 산행로 우측에 높이 30m가 넘는 거대한 돔형 바위가 나타난다. 물동이를 엎어놓은 모양이라고 해서 합천 쌍백면 사람들은 '동이듬'이라 부르는 바위다. 잘 정비된 주 산행로를 따르면 이 바위의 왼쪽으로 우회,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기에 취재팀은 가족산행을 염두에 두고 쉬운 길을 택했다. 하지만 '동이듬' 부근의 '산성산 0.2㎞'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능선 마루금을 살짝 넘어가면 로프 구간과 바윗길을 통과해 동이듬과 선듬을 거쳐 오르는 또 다른 길이 있다. 재미는 있지만 그만큼 위험하다는 점도 염두에 두자. 쌍백면사무소의 정상호 환경보호계장은 "안전시설을 좀 더 확충하면 큰 인기를 끌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20~30년 전 쌍백초등학교 학생들이 소풍을 왔을 때만해도 일부 '용감한' 어린이들은 마치 다람쥐같이 날쌘 동작으로 거대한 동이듬 꼭대기까지 오르내렸다고 한다.

   
상투바위에서 산성산 정상 쪽을 보면 멀리 동이듬과 선듬(경사면 중간 입석바위)이 보인다.

취재팀은 동이덤을 왼쪽으로 우회해 10분 만에 정상 아래 헬기장에 닿았다. 주변 시야가 확 트인다. 억새의 물결도 시작되니 가을산행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오른쪽 억새밭 사이로 2분만 가면 쌍백면에서 세운 검정색 정상석이 우뚝한 산성산 정상이다. 정상석이 바라보는 서쪽 먼 곳에 지리산 천왕봉과 황매산이 아련하게 다가오고 북쪽으로는 오도산과 남산제일봉, 가야산까지 드러난다. 능선과 능선이 겹치며 하늘과 맞닿을 때까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풍광이다. 남쪽 가까운 곳의 한우산을 바라보면 천혜요새의 역할을 했던 자연성벽인 병풍바위와 수많은 기암들이 단풍과 어우러져 화려한 풍경을 연출한다. 한우산 정상 뒤로 자굴산 정상도 보인다.

한우산 방향으로 길을 잡아 살짝 내려서면 곧바로 억새 군락지가 이어진다. 조금 전 헬기장 주변 억새밭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크고 멋스럽다. 뉘엇뉘엇한 가을 햇살에 반사된 억새꽃이 황금색으로 빛난다. 억새밭을 지나 산성축조 흔적도 살피면서 10분쯤 걷다보면 어느새 '상투바위전망대'. 전망대 앞 큰 바위에 얹혀 있는 높이 3m, 너비 1m 정도의 바위가 상투를 닮았다고 해서 상투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일부 산꾼들은 '촛대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낙조는 황홀함의 극치다. 황매산과 악견산 금성산 허굴산 등 합천의 대표적인 산들도 낙조 속에서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전망대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성산 정상 아래 병풍바위와 동이듬, 경사면에 우뚝 솟은 입석바위인 선듬 등 거대한 바위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왼쪽에는 또 다른 전망바위가 우뚝 솟았다.

   
산성산 정상석 옆 억새밭 뒤로 한우산과 자굴산이 보인다.

상투바위전망대에서 4~5분 가면 조금 전 상투바위에서 왼쪽에 보였던 전망바위로 오르는 길이 있다. 이곳에서 본 산성산 암벽의 경치도 빼어나다. 이후 본격적인 하산 갈림길인 찰비재사거리까지는 5분 정도면 족하다. 직진하면 756봉을 거쳐 한우산 자굴산까지 갈 수도 있고, 756봉 갈림길에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중간 갈림길에서 내초소류지 방향으로 꺾어 하산하는 좀 더 먼 원점회귀 산행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천왕봉 낙조를 보기 위해 상투바위전망대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한 탓에 취재팀은 이곳에서 오른쪽 내초마을로 곧장 하산하는 길을 잡았다. 이정표와 쉼터 등을 갖추고 깔끔하게 정비돼 있는 길이다. 날이 더울수록 너덜지대 바위틈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고 해서 '얼음골'이라 불리는 계곡을 따라 40분가량 내려서면 임도에 닿는다. 내초마을 주차장까지는 10분이면 족하다. 


# 떠나기 전에 

- 쌍백 사람의 안산… 옛날엔 자굴산으로 통칭 
- 최근덕 성균관장 작사 쌍백초등 교가에 등장 

합천 쌍백 사람들에게 산성산은 어떤 의미의 산일까. 단적으로 말해 산성산은 쌍백 사람들의 안산이다. 이른 아침 시골집 툇마루에 나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앞산이 산성산이고, 그 산등성이에서 해가 솟는다. 일상생활도 산성산과 눈맞춤하며 영위한다.

그리고 또 하나.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쌍백초등학교 학생들은 학교 동남쪽에 우뚝 솟아 있는 여러 개의 높은 산봉우리를 통틀어 '자굴산'이라 불렀다는 사실이다. 수업 중 문득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리면 여지없이 큰 성벽의 모습을 한 '자굴산'이 거기에 있었다. 그 산은 쌍백 아이들에게는 드높은 꿈을 펼치고 싶은 열정과 기상의 상징이었다.

"찬란한 아침햇살 퍼져 오르면, 자굴산 높은 봉에 서기 어린다. 은혜로운 내고장 아늑한 터전, 그 품 속 넓고 크다. 사랑의 쌍백교. 우리는 꽃봉오리 스승의 보람, 배움길 갈고 닦아 내일에 펴자." 1932년 개교, 올해로 78년째를 맞은 쌍백초등학교의 교가의 가사에도 그 의미가 내포돼 있다.

대한민국 유학계의 '큰 어른'이라 할 수 있는 최근덕(77) 성균관장이 젊은 시절 가사를 붙임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이 교가의 주요 소재도 자굴산이다. 합천 봉산면 노파리 태생인 최 관장은 5세 때 쌍백면 평구리로 이주, 쌍백초등 인근의 서당인 '모원재(慕遠齋)'에서 유학 공부에 매진해 20대 초반에 사서삼경(四書三徑)을 완벽하게 암송할 정도로 학문적 성과를 높이고 결국 당대 최고의 유학자 중 한명으로 대성한 인물. 이웃한 삼가면이 조선시대 중기 대 유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을 내세운다면 쌍백은 현세의 큰 유학자인 최 관장을 내세울만 하다.

한편 초등학교 교가에서 보듯 쌍백 어린이들의 자굴산 사랑은 한이 없었다. 그들은 졸업 후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자굴산의 정상이 행정구역상 의령군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당혹스러워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자굴산이라고 알고 있었고, 봄·가을 소풍도 자주 갔던 그 산이 사실은 자굴산이 아니라 '산성산'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년시절의 추억과 꿈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부터 매년 11월이 되면 전국의 쌍백초등학교 출신 출향인들이 산성산에 모여 '내고향 쌍백사랑 산행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오는 7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