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산악회

폭염속에 미타산을 찿아 갑니다

대가야고령 2015. 8. 2. 21:40

< 미타산 이란 >
서방 극락정토에 산다는 아미타불의 ‘미타’에서 왔다는 산 이름이 의미 있게 들린다.

1300년 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 유학사도 끌린다. 고려 무인시대, 반역의 아이콘으로

 칼 사위에 부침했던 이의민은 종국에 미타산에서 죽었다.

묵방, 옻공, 달밭은 이 산에 등을 붙이고 사는 작은 마을이다.

옻공(칠공)은 옻을 바치는 마을, 묵방은 고요하고 아늑한 마을,

달밭은 달빛에 달그림자 내려앉는 마을이다. 지금 옻공은 절로 바뀌었고

묵방은 3가구, 달밭은 7∼8가구가 산다.

 

< 미타산(663m)은

의령군 부림면 묵방리와 합천군 적중면 경계에 있다.

높이가  비슷한 인근의 천황산과 국사봉으로 연결된다.

 

< 미타산성은

 삼국시대 축성한 것으로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서 백제군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인근 상사덤은 마을 처녀가 상사병에 떨어져

죽었다는 바위더미다.

고려 무인정권기 세력가 이의민은 미타산성에서 죽었다.

8척 거구에 힘이 장사였던 그는 맨손 무예를 잘해 의종에 눈에 띄어 출세가도를 달렸다.

별장 중랑장 상장군까지 올랐으나 자신을 총애한 의종의 척수를 부러뜨려 죽이는 반역을 한다.

반역의 공으로 대장군까지 승진하고 최고권력을 쥐게 되나 결국 그도 칼에 스러진다.

1196년 최충수와의 비둘기사건이 빌미가 돼 그의 형 최충헌에 쫓기는 신세가 돼 미타산별장에

숨어들었다가 이들에 의해 축출된다. 미타산별장이 유학사인지는 알 수 없다.

 

미타산 정상에 도착한다.

봉수대가 있어 봉화산 또는 방아산이라고도 불렀다.

흔적으로 보이는 일부 봉화터도 있다.

 

옛날 산에 오른 한 노인이 미타산 봉화지기에게 하룻밤 유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심성이 고약해, 맑은 우물이 아까우니 흙물을 먹어라”며 악담하고 사라졌다.

그가 떠난 후 실제 물이 탁해졌고 현재까지 미타산 물이 흐려 있는 이유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거절한 봉화지기보다 흙탕물로 분탕질한 노인이 더 고약하다.

요즘 같으면 보복했다고 철창신세 질 노인이다

 

서쪽에 천황산 국사봉 대암산 황매산 줄기가 확연하고, 동쪽에 화왕산, 북동쪽에

대구 달성 비슬산까지 하늘 금을 그린다. 맑은 날은 부산 금정산 고당봉까지 조망된다

 

팔각정자를 지나 내려서면 토굴로 불리는 암자가 있다.

스님은 “밭에 채소를 기르거나 오가는 사람들의 은혜로 먹고 산다”고 했다.

그 아래 민가에 할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하산 길은 임도가 개설돼 있다.

암자 앞에 세워져 있던 지프가 오가는 길이다. 미타산 등산객도 주로 이 길을 이용한다.

 

<유학사>

유학사는 돌계단을 올라 오른쪽 마당에 요사채, 왼쪽에 만세루, 중앙에 오층석탑,

극락전, 그 왼쪽에 범종각이 있다. 극락전 뒤로 칠성각 용왕각까지 있다.

여승이 거처한다는 소릴 들었으나 절은 조용했다.

천년 고찰이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인기척이 없었다.


유학사(留鶴寺)는 660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미타사(彌陀)터에다가

훗날 무학대사가 다시 지어 창건시기를 거슬러 1300년 전으로 본다.

(유학사는 가지를 못했다)

 

<<< 미타산을 찿아서 >>>

15. 8. 1 폭염이 절정. 우리는 미타산 으로 간다

수림, 저의 부부. 합천 안여사 님의 안내로 간다

의령 부림 신반리를 거쳐서 미타산으로 찿아간다

 

소나무 숲속길을 편안하고 무더위를 이겨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걷고 또 걷고 계속 걸어서 미타산을 찿아서 간다

 

미타산성을 아주 인상 깊게 둘러보고 또 걸어서

미타산 정상에 도착. 초계 분지 조망이 멋지다

 

정상에서 맛있는 과일 등을 먹은후

남자 2명은 합천 청덕으로. 나머지는 차량이 있는 곳으로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제되로 없어서

무더운 더위속에 나무 숲속에서 길을 찿아서 헤맸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는 코스다.

 

내려가서 햇빛이 쪼이는 청덕 들판을 한없이 걸었다 

기회가 되면 다시한번 제되로 알고 가고 싶다

 

 

                                 차량 주차후 미타산으로 출발 지점

 

 

 

 

 

 

 

 

 

 

 

 

 

 

 

< 미타산성은

삼국시대 축성한 것으로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서 백제군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인근 상사덤은 마을 처녀가

상사병에 떨어져 죽었다는 바위더미다.

고려 무인정권기 세력가 이의민은 미타산성에서 죽었다.

8척 거구에 힘이 장사였던 그는 맨손 무예를 잘해 의종에 눈에 띄어 출세가도를 달렸다.

별장 중랑장 상장군까지 올랐으나 자신을 총애한 의종의 척수를 부러뜨려 죽이는 반역을 한다.

반역의 공으로 대장군까지 승진하고 최고권력을 쥐게 되나 결국 그도 칼에 스러진다.

1196년 최충수와의 비둘기사건이 빌미가 돼 그의 형 최충헌에 쫓기는 신세가 돼 미타산별장에

숨어들었다가 이들에 의해 축출된다. 미타산별장이 유학사인지는 알 수 없다.

                        미타산성 아래 농사를 짓고 있는 노인 농장 입구

 

          잘 관리되어 있는 미타산성은 2킬로미터 둘레, 높이 3미터

 

                 미타산성 내에 있는 미타사 극락전과 요사채

 

                                       미타사 극락전

 

 

                              미타사 극락전 옆 요사채

                                       미타사 산신각

 

 

가는 길목

                 미타산성을 둘러본후 미타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

 

 

 

 

 

 

 

 

 

                 미타산 정상에서 초계면과 청덕면을 배경으로

 

 

 

 

 

 

미타산 정상에서 합천 청덕면으로 하산. 지다리 저수지에서 바라본 미타산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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