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경주 최씨고택

대가야고령 2011. 2. 9. 19:50

경주 최씨고택 소재지;경주시 교동 69번지 (중요민속자료 제27호)

경주최씨의 종가로 1700년경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월성(月城)을 끼고 흐르는 남천옆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았고, 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 고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99칸이었다고 하는데 사랑채와 별당은 1970년 불타고 주춧돌만 남았다.

 

 

 원래 고택의 터는

신라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1970년 11월 화재로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모두 잃었다가

 2007년 4월 복원하였다.

 

 

 "ㄱ"자형의 사랑채는

사랑대청,사랑방,침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문으로 돌아서면 안채마당이고

 안채는 부엌,안방,대청,건넌방으로 구성되어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안채의 장독대 모습이 참으로 고즈늑하게 보인다.

 

 

 

 부엌 앞쪽의 방 툇마루에는 계자난간을 설치하였다.

 

 

 

 

 

서기 1671년 현종 신해년, 삼남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경주 최 부자 최국선의 집 바깥마당에는 큰 솥이 내걸렸다.

주인의 명으로 그 집의 곳간이 헐린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장차 굶어 죽을 형편인데

나 혼자 재물을 가지고 있어 무엇하겠느냐.

모든 굶는 이들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 하라.

그리고 헐벗은 이에게는 옷을 지어 입혀주도록 하라.

큰 솥에는 매일같이 죽을 끓였고 인근은 물론

멀리서 굶어 죽을 지경이 된 어려운 이들이 소문을 듣고

서로를 부축하며 최 부잣집을 찾아 몰려들었다.

죽으로 생기를 찾은 이들은 이어서 쌀 등 먹을거리도 얻었다.

흉년이 들면 한 해 수천, 수만이 죽어나가는 참화 속에서도

경주 인근에선 주린 자를 먹여 살리는 한 부잣집을 찾아가면 살 길이 있었다.

그해 이후 이 집에는 가훈 한 가지가 덧붙여 진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경주 최 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 중에서

 

 

 

 

 

 

 

 

 사당은 안채에서 북으로 따로 쌓은 담장안에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크기로

건축되었다.

 

 

 

 정원에서 석련지, 등대석 등의 석물이 남아 있다.

 

 

 

 

법주는 경주 최씨 종가에 전해 오는 비주(秘酒)로

조선 숙종 때 궁중에서 음식을 관장하던 관직에 있던

최국선이

고향으로 내려와 최초로 빚은 것으로 궁중에서 유래된 술이다. 

현재도 법주를 생산하고 있다.

 

 

 

{경주 최부잣집의 6개 가훈}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을 지니지 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혀라.

여섯째,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찾아가는길 경부고속도로 경주IC->포항방면->배반사거리(좌회전)->오릉->요석궁->최씨고택

 

출처 : 울타리 너머 그리움
글쓴이 : 노루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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